특허 괴물

특허법은 법의 목적을 “발명을 보호·장려”하면서 “그 이용을 도모”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발명을 “보호”하면서 또한 발명의 “이용”을 도모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서술인데, 왜냐면 말이 좋아 보호지 실은 발명자에게 발명에 대한 권리를 독점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특허를 옹호하는 주장은 “기술은 개발이 어렵고 베끼기는 쉽다”라는 관념입니다. 기술에 관하여 수인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신기술 개발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아무도 투자하려 들지 않고, 남이 만들어낸 기술을 베낄 기회만 노리게 된다는 것이 특허 옹호론자들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수인의 딜레마 상황을 방지하고 비용을 들여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전용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발명자의 노고를 보상하고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입니다.

물론 자유 진영에서 유구한 세월에 걸쳐 가해온 비판과 반박이 존재하지만 일단 제쳐 두고, 현실적으로 발명을 독점시키려는 의도와 발명의 이용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쉽게 동시에 달성될 리가 없습니다.

행패

특허 괴물은 기술 기업으로부터 특허를 넘겨받아 특허 소송을 하고 다니며 특허사용료를 요구할 뿐 실제로 특허등록된 기술을 스스로 실시하지는 않는 기업들을 가리킵니다. 특허권자에게는 전용의 실시권이 주어지는데 이 권리를 스스로 실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실시 주체(non-practicing entity)라는 말로 바꿔 부르기도 합니다.

특허 괴물은 더 이상 예외적이거나 일탈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매년 미국 특허 분쟁 연간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회계법인 PwC가 내놓은 〈2014년 특허 분쟁 연구〉에 따르면 2013년에 있었던 6500건의 특허 분쟁 가운데 특허를 실제로 사용하는 특허권자의 소송은 3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특허 괴물의 짓이었습니다.

스타트업 Life360은 AGIS라는 기업으로부터 특허 소송을 당했는데, 일반적인 기업들이 하듯이 변호사와 상담하고 적당한 사용료를 줘서 합의를 하지 않고 전면전을 벌였습니다. Life360의 창립자 Chris Hulls는 AGIS가 주장하는 특허의 내용을 보고 “이 주장대로라면 지도에 위치 마커를 찍거나,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을 이용해 가까이 있는 사람들끼리 엮어주는 서비스는 모조리 다 특허 침해가 될 것”이라며 이런 특허가 인정될 리 없다고 확신하고 전면전에 나섰다고 합니다.

특허를 갖고 있기만 할 뿐 기술기업도 아니고 특허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소송배상금과 특허사용료만 가지고 먹고 사는 특허 괴물들에 대해 여론은 대개 매우 좋지 않은 편입니다. 배심원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이것은 크게 불리하기 때문에 특허 괴물들은 주목받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합니다. Life360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자기 회사를 공격한 특허 괴물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게 만들고, 법정에서 싸워서 이겼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AGIS가 제소한 이후에도 Life360에 특허로 시비를 거는 다른 특허 괴물이 둘이나 더 있었는데, Life360이 강경 대응하는 것을 보고 도중에 포기하고 스스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 사례처럼 특허 괴물의 요구가 실은 허풍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어차피 특허로 법정에 가 봐야 이기기는 어려울 것임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상대방이 겁을 먹고 특허사용료를 내놓으며 합의해 주려고 한다면 공돈을 챙길 수 있을 것이므로 공갈 협박을 하고 다니며 돈을 걷는 것입니다. 밑져야 본전이고 남는 장사죠.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허 괴물은 기술기업도 아니고 특허권의 실시주체도 아니기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자사 기술을 개량하거나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남에게 시비를 거는 것 외에는 더 돈을 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비를 걸고 다니지 않는 특허 괴물들이 도태됩니다. 시스템이 특허 괴물의 삥뜯기를 장려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법무 부서를 거느린 대기업이라면 특허 괴물의 공격을 당하더라도 쉽게 무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특허 괴물은 조직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특허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드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은 창업자 세 명이 창고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을 간단히 내려앉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허법이 언필칭 ‘보호’하고 ‘장려’한다는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은 오늘날 대부분 그런 스타트업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구글도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페이스북도 그런 형태로 시작했죠. 시대가 바뀌었는데 특허법은 바뀌지 않아 산업 발전을 촉진하겠다던 특허법이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실태

실제로 실리콘 밸리는 특허 괴물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기업들도 특허 괴물들에게 열심히 털리고 있습니다.